2020년 3월 10일 화요일

남편들이 던지는 말.


제 남자 친구들 그러니까 40대 초반에 가장들.
이 친구들과 만나서 아이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러나 저러나 결론적으로 마무리 하면서 뱉는 말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날 닮았으면 ~~ 정도는 하겠지'
두번째는 ‘애들은 다 지가 먹고 살거 갖고 태어난다고 하더라'

첫번째는 스스로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해서 그럴테고
두번째는 옛날 부터 어른들 입을 통해서 전해져 오는 말이죠.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잘 큰다 라는 뜻이겠죠. 하지만 양면성이 있습니다.

저는 저 두가지 문장은 암묵적인 폭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첫번째 말대로 한다면, 내 애도 날 닮았으면 성공 할 것이다. 근데 그게 아니라면 엄마를 닮았거나 그게 아니면 교육을 잘 못 시켰거나… 이것이 아주 사람을 피 말리게 하는 말 입니다. 구체적으로 저 문장을 입 밖으로 내 뱉지 않았어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는 무의식중에 전달됩니다.
아빠는 육아에 크게 관여도 안하고 의논이라도 할라치면 모른척하면서 결과가 안좋으면 그 탓은 죄다 육아하는 사람에게 돌아가니 환장 할 노릇 입니다.
다행히 저는 남자인 제가 육아를 하면서도 오히려 엄마 보다 주도적으로 하기 때문에 부부가 대화를 자주 하는 편 입니다. 문제는 저희 부모님이 저를 키우면서 그랬습니다. 여타의 가정에서 처럼 아버지는 밖에 일 핑계로 평일에는 피곤하고 주말에는 자기 하고 싶은 걸 해야하고 엄마는 혼자서 이걸 가르쳐야할까 저걸 가르쳐야 할까 전전긍긍 하시는 것이죠.

두번째 ‘애들은 다 자기 밥그릇을 갖고 태어난다'
이 말도 참으로 무책임한 말입니다.
어줍잖게나마 명리학을 공부한 저도 사람의 팔자 흐름을 보면 언젠가는 먹고 살만한 시기가 옵니다. 이른 시기에 오는 사람이 있고 아주 늦게 오는 사람도 있고요. 결국 힘들때 좀 버티면 죽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자기 밥그릇이 깡통이 될지, 잘 빚어진 사기 그릇이 될지는 어릴시절의 부모의 노력여하에 달려 있습니다. 위로는 되지 않습니다. 저도 매년 힘들다 힘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보면
언제 이녀석이 이렇게 자랐나 싶은게, 마음 졸였던 순간들도 성장하면서 버릴것을 버리는 것을 보면,
알아서 크는 듯 합니다. 하지만 육아 앞에서 무지한 자신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하는 말이라면 생각 해봐야 할 문제 입니다.

두가지 말도 좋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나를 닮았다면~’ 이 아니라 ‘당신을 닮아서 ~를 잘한다’ 이렇게 바꾸면 좋겠죠?
‘밥그릇을 갖고 난다'라는 말은 아이가 다 성장해서 용기를 줄 때 한번씩 사용하는게 어떤가요?



20년의 시간.


<2016>

20년의 시간.


오늘 아이와 함께 수족관에 다녀왔습니다.
36개월부터는 유료라서 그 전에 좀 가볼까 하구요.
수족관 구석에 작은 놀이방이 있었습니다.
아이는 오랜만에 보는 구조물이 반가운지 소리를 지르며 달려갔고요.
아무도 없었어요.
그래도 혼자서 이리저리 기어다니고 미끄러지며 놀더군요.
그때 저쪽에서 한무리의 여고생들이 다가왔어요.
아마 고3인가봅니다. 수능도 끝났겠다 친구들끼리 바람쏘이러 왔나봐요.
썩 잘하지 못한 화장이 오히려 어울리는(?) 나이에 아이들이 좋아보였습니다.
역시 여학생들이 감수성이 남자애들이랑 달라요.
놀이방을 보자 '와~ 놀이방이다~ 나 애기때 다닌거 기억나~'
하면서 셀카도 찍어댔습니다.
저도 아빠육아 한답시고 육아3년 했더니 드는 생각은..
'우리 아들도 이제 16년만 있으면 저렇겠네.. 대학간다고 까불겠네..'
태어나서 20년...
단세포같은 녀석들이 만물의영장으로 거듭나는데 20년이 걸립니다.
지금 말도 어버버 하는 저 녀석이 수학도 배우고 영어도 배우고 할테고요..
그 세월 20년이 지금 나이들어가면서 돌아보면 금방이였는데
한 인간의 성장으로 보면 엄청난 변화가 있었더거죠.
근데
20년전에도 성인이였던 나는 지금 얼마마 성장을 했는가.
세포가 만물의영장으로 탈바꿈 할 정도의 드라마틱한 성장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어른으로써 성장은 해나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반문하게 되었어요.
어른으로써의 완전한 성장은 언제일까요?
누군가는 이미 했을 수도 .. 또 누군가는 죽어도 이루지 못할 수도 있겠죠..
내 아이가 대학을 가려는 저 나이즈음..
나는 아이에게 평생의 화두를 던져줄 정도의 능력을 갖게 될까요?
그러고 싶습니다.



2020년 3월 8일 일요일

아이의 영어이름 꼭 필요한가?!


아래 글은 제가 2세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 입니다.

얼마 전 TV뉴스를 보니 영어이름 작명이 유행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 이름들이 한자어로 되어 있어, 아이가 태어났을 때, 사주에 맞춰 작명을 하는건 익히 들었지만,
영어도 그에 맞게 알파벳이 주는 기운과 의미를 담아서 짓는다고 했다. 그 가격이 엄청 비쌌다.
그러니까 조금 많이 빠른 부모를 두었다면 아기들은 돌이 지나기도 전에 영어이름도 갖게 되는 것이다.
나의 아이 이름은 아버님과 작은 할아버님 그리고 아버님의 지인이 각각 지어주신 이름 중에서 택했다.

문휘운.

나는 '휘'자를 영어로 어떻게 표기해야되나 고민 하던 중에 10여년 전 캐나다에서 필름 스쿨을 다니던 시절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어느 날, 나는 캐나다인 친구와 한조가 되어 학교 지하 편집실에서 열심히 편집 중이였다.
그때, 학교 재학생이 아닌 파트너의 친구가 놀러왔다.
그 백인친구는 의례적으로 나에게 이름을 물어보았다.
나는 '희주'라고 했다. 그 친구는 눈썹을 실룩거리더니 두어번 발음을 더 물어보았고
나는 HEE JOO라고 영어 철자까지 동원하며 알려주었다.
그랬더니 그 백인친구는 이름의 뜻이 뭔지도 물었다.
나는 내 이름의 한자어 뜻을 영어로 풀어서 의미를 설명해주었고, 그 친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 많은 동양인 유학생을 만났지만 이렇게 이름을 알려주는 사람은 처음 봤어. 다들 영어식 이름이였거든'
그 친구가 덧붙였다.

'여기 이 북미에는 수천명의 데이빗이 있고 수만명의 제임스가 있지만...
이제 내가 아는 HEEJOO 는 너 단 한사람이야'

아.. 그 순간.. 난 뭔가 민망하고 닭살돋았지만 감동적이였다.
요즘 다들 유치원을 가면 4살이후면 영어유치원에 보내고 초등학교에서도 영어수업을 듣는다고 한다.
난 4살부터 영어유치원에 보낼 형편이 될지도 궁금하지만 보낼 생각도 없다.
근데 영어이름은 왜 짓는가..
아마도 현지선생님이 우리 아이를 부를거나 기억하기 쉽게 하려고 짓는 것이다.
나도 유학가기 전에 주변에서 영어이름 하나 만들어가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유학가기 전 회화학원을 다니면서 교포출신 선생이
나에게 Ryan(라이언)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스필버그의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그 라이언이다.
유학초기에는 좀 사용했지만, 위에 있었던 일로 사용하지 않는다.
일본으로 유학간다고 사람들이 창씨개명하라고 하진 않는다.
왜? 가서 일본사람들이 부르기 쉽게 나카무라나... 멋지게.. 사쿠라기 하나미치(슬램덩크 강백호의 일본이름) 같은..뭐 이런것도 좋지 않나?
이것은 아마 우리가 얼마나 영어에 쫄아 있는지 모여주는 결과이다.
영어권에서 태어나서 그 나라의 국적을 가지고 있는 2세나 3세들이 영어이름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고 오히려 한국어 이름을 가진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영어선생님을 위해서? 아마 한국이름을 가지고 있으면 더 기억하기 쉬울것이다.
다만 발음이 힘들겠지.. 그것은 그 영어선생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지
애써 학부모가 배려 해 줄 일은 아니다.
그 아이들은 나처럼 할아버지나 , 아버지 혹은 지인들이 정성드려 좋은 뜻으로 짓고
그 이름들 중에 부모가 엄선해서 고르고 골라 선택한 이름 일 것이다.
그런 이름을 외국선생의 입에서 불리게 하고 아이가 성장해서 외국으로 나가게 되어서 더 불려지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쫄지말자. 그리고 무턱대고 다들 짓는다고 짓지 말자.
내 아이의 이름이 현지 영어 선생이 발음하기 어려운면 몇번이고 가르쳤으면 좋겠다.
그리고 덧붙여서 이 아이의 이름이 무슨 뜻인지도 설명해주면 더 좋겠다.


2020년 3월 7일 토요일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안녕하세요. 달감독 입니다.
책 제목의 문장을 많이 들었습니다.
이 책은 페미니스트 작가가 페미니스트의 입장에서 쓴 책 입니다. 그럼 남자인 제가 왜 이 책을 읽었을까요

뭐 난 다른 남자들과 다른 생각있는 남자야 아니면 나는 평등주의자야와 같은 이념이나 사상 또는 지적허세를 부리기 위해서 읽은 책은 아닙니다.



궁금했습니다. 거리에서 대규모의 시민들이 시위를 하면 궁금해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게 한 시민으로서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를 하나의 지붕 안에 가족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봤을 때, 우리 가족의 누군가가 거리에 나가서 시위하는 저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페미니스트가 어떤 것이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제가 페미니스 서적을 많이 읽어보진 못했지만 남성주의자가 쓴 책은 한권도 보지 않았으니 상대적으로 오히려 더 많이 읽은게 되겠네요.

책은 리베카 솔닛이라는 페미니스트 작가가 쓴 엣세이 모음 입니다. 뉴스와 대중문화 등ㄷㅇ 우리 주변에 수많은 카테고리를 넘나들며 남녀 평등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설득력이 있습니다. 아 여기서 설득력이라는 말은 제가 페미니스트의 반대편에 있는데 이 책으로 인해서 설득이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조금은 더 저자의 생각에 가까워 졌다고 볼 수 있을거 같습니다. 근데 저자의 입장에서 볼 때 저 같은 남자들을 방관자적 입장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가가 미국에서 일어난 몇몇 끔직한 사건들을 예를 든 부분이 있는데 한국에서 얼마전에 일어난 사건과도 아주 비슷합니다. 가해자들의 행동과 피해의식이 비슷해서 놀랐습니다.



정신질환이 있다는 남자가 여성들을 살해하는 사건을 볼 때마다 책에서 소개된 남성들의 반응 처럼 저 역시 '난 안그런데....' 왜 소수의 이상한 남자애들이 한 짓으로 모든 남자들에게 총구를 겨누나 생각한 적도 있어요. 근데 이 책의 이 한문장으로 '아' 라는 탄식이 입에서 절로 나왔습니다.




'요점은 모든 여자는 다 그런 남자들 두려워하며 살아간다는 점이다' 그렇습니다. 세상에 미친놈이 한명만 있어도 여자들은 그 타겟에 자기가 될까봐 동네를 다니기도 무서운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죠.



페미니스트가 주장하는 것은 이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형편은 솔닛이 말하는 것도 조금 차이가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100% 동의 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남성이 여성에 대한 책을 읽고 여성이 남성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크로스 스터디? 라고 해야할까요
그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번 읽어 보세요!

자 그럼 오늘 소개해 드린 책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든다' 였습니다.